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월요일 오후 2시. 자동차가 학교에서 멀어져갈수록 선생님 세분의 표정이 환해진다. 일과 시간 중 어디론가 향하고 있으니 ‘일탈 학생’ 같은 느낌마저 드나 보다. 오해 마시라. 나는 엄연히 우리 학교 ‘새내기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중이다. 연수단 이름은 연빙놀. ‘연수를 빙자한 놀기’다.
운영이 늘 어려웠던 우리 대안학교들은 교사를 채용한 다음 그들의 지식, 기술, 열정을 갑 티슈처럼 뽑아 쓰기만 했다. 몇년 뒤, 애 많이 쓰고, 마음 여린 교사부터 차례로 소진해 공동체를 떠난다. 별수 없다. 다른 교사를 맞아들여 비슷한 유형을 반복했다. 돌파구가 필요하다.
도담삼봉에 도착해 서정적인 강 풍경에 눈도장을 찍었다. 이내 차를 몰아 해발 600m 즈음에 있는 ‘카페 산’ 2층에 자리 잡았다. 단양의 유장한 산세 한가운데를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통유리창 너머 출발대 위에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부산스럽다. 설렘과 긴장감 뒤섞인 표정을 담은 채 멋진 풍경 속으로 뛰어들 참이다. 이야기를 시작한다. 논의 주제는 서머힐과 자유교육. 책을 읽고 난 다음 각자 느꼈던 생각을 펼쳐냈다. 마음과 시선이 닿았던 책 대목이 저마다 다르다. 학교에서 맡은 일, 경험했던 장면이 제각각이니 마땅히 그러하리라.
서머힐 설립자 닐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그 말은 곧 시간을 충분히 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 정서는 자유로움 한가운데서 발달한다. 왜 정서가 중요한가. 그것이 학습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란다. 정서나 흥미란 강제하거나 가르칠 수 없다. 정서는 자유라는 이름의 양분을 먹고 자란다. 그러니 자유란 곧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동의어다.
대화가 오가다 보니 우리 넷 모두 학창 시절에 자유다운 자유를 거의 누려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유를 사용해 보지도 못한 선생들이 학생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겠다고 나서다니. 아이러니다. 아이들 눈동자에는 우리가 매사에 전전긍긍하는 어른들로 비칠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학급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선생님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분의 난감한 상황에 동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산마루에 해가 기운다. 서둘러 하산한 뒤 단양구경시장 근처에서 마늘정식을 먹는 것으로 이날의 ‘연빙놀’은 마무리한다.
아이들과 만나는 현장은 매일 아찔하다. 무슨 이유인지 반 전체 기운이 축 늘어져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날이 있다. 자연체험 날짜를 자기들과 상의 없이 바꾸려 한다며 거의 민란 수준으로 들고일어날 때는 어찌할 것인가. 내가 자유를 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잘 커나갈까. 만약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선생이라는 자가 제자의 청소년 발달기 중요한 때를 별다른 가르침 없이 무책임하게 방치한 것이라면? 교사는 윤리적, 혹은 전문적 판단 아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정답 없는 모호한 순간을 자기 한몸으로 온전히 버텨야 한다. 매뉴얼 같은 것은 안 통한다. 모든 교사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휘몰아치는 슬픔에 흐느낄 때, 눈물을 씻어 주시옵소서. 세속의 영화와 물질의 매력이 저를 유혹할 때, 저에게 이를 능히 물리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제가 하는 일에 의혹을 느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총명과 예지를 주시옵소서!” 미군정 당시 한국 교육의 틀을 다진 교육계 원로 고 오천석 선생의 글이다. 1972년에 펴낸 책 <스승> 서문 가운데서 가져왔다.
광주광역시 청소년 삶디자인센터를 찾았다. 박형주 센터장의 설명을 들으며, 청소년들의 삶과 배움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엮어갈 수 있는지 ‘가능성의 빛’을 보았다. 이병곤 제공
연빙놀 주제는 진보주의 교육에 대한 이해, 공부의 기초 체력인 문해력의 중요성,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영원한 숙제―민주주의 등으로 구성된다. 다른 지역 대안학교 다섯 곳을 선택해 현장 탐방을 다녀온다. 모든 일정은 평일 근무시간대에 학교 밖 불특정한 곳에서 진행한다. 장소 선정은 내 마음대로다. 단, 풍경은 멋지고,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는 끊김이 없다. 지식과 정보만 쌓으려는 교사 연수는 효력이 짧다. 초임 교사끼리 서로에게 독립된 대안학교가 돼 주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어떻게 힘을 모아야 할지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우정이 알차게 쌓일 때라야 외로운 길 오래 함께 걸을 수 있다. 진짜 선생은 현장에서 다듬어지면서 탄생한다. 대안교육의 미래가 그 안에 있다.
<출처 : 한겨레>
#사설
#신문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시사
#칼럼
[칼럼] 방미를 앞둔 대통령께 알려드리는 ‘외교 비책’ (0) | 2023.04.25 |
---|---|
[뉴노멀-혁신] 살아남은 비트코인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0) | 2023.04.10 |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실수, OECD에 소급정정 요구해야 (0) | 2023.04.06 |
[유레카] 음원차트 1위 한 광고음악…뭔 노래길래 (0) | 2023.04.06 |
[칼럼] 한국과 일본은 ‘담대한 중견국 연대’에 나서라 (0) | 2023.04.05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