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민사회와의 협력 및 시민단체 지원의 근거가 돼온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을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2020년 5월 제정된 이 규정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시민사회위원회를 두고 민관협력 체계 및 협업 연결망 구축·강화, 시민사회 전문가 양성 지원 등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역할을 맡는 시민사회발전위원회가 2003년 만들어져 줄곧 유지돼왔다.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민관협력 체계를 하루아침에 허물려 한다는 시민사회의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국무총리비서실은 지난 1일 이 규정의 폐지에 대한 의견을 달라며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에 비공개 공문을 보냈다. 16일까지 회신이 없으면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사안의 성격에 비춰 추진 방식과 일정부터 졸속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행정안전부는 7일 636개 정부 위원회 중 시민사회위원회를 포함해 246개를 폐지하거나 통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주장대로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가운데 비효율적인 곳들의 정비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시민사회위원회와 그 관련 규정 폐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이다. 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기능에서부터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시민단체들은 우리 사회의 진전에 기여해왔다.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이 협력 체계를 유지해온 이유다. 시민단체의 활동에 정부가 협력하고 물적 기반이 취약한 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당연한 소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가 폐지하려는 규정에는 ‘시민사회의 자율성·다양성·독립성 보장’ ‘시민 공익활동의 가치 존중’ ‘이를 위축시키는 제도와 관행을 없앨 것’ 등 중요한 기본 원칙이 담겨 있다. 이런 규정을 아무런 대안 없이 없애는 것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에 대한 정부의 철학 부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현 정부 들어 감사원은 정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 실태에 대한 감사도 진행 중이다. 이런 일들이 겹치니 현 정부가 시민사회를 협력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건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정부는 시민사회위원회와 관련 규정의 졸속 폐지를 중단하고, 건전한 정부-시민사회 관계를 발전시킬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출처:한겨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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