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추가 ‘영토 침범’을 가정한 ‘검토’ 지시라서 당장 합의 파기 절차를 밟는 건 아니지만, 애초 남북 간 합의의 의미가 우발적인 확전 방지에 있음을 고려할 때 섣부르고 위험한 발언이다. 새해 초부터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윤 대통령이 연일 거칠고 강한 수위의 발언으로 맞서며,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 위험을 높이는 상황이 몹시 우려스럽다.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작성된 군사합의는 “지상과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명시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듯 이 합의를 위반해, 수많은 도발을 자행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동·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북방 해상 완충구역 안으로 해안포 사격을 한 이래 모두 15건에 이른다. 특히 지난달 26일 소형 무인기 5대를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침투시켜 서울 상공까지 휘젓고 다닌 사례는 합의를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이 무인기 사태에서 비롯된 충격과 그 여파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의 의미와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합의는 접경 지역에서 확전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소하고 우발적인 충돌이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북한이 먼저 합의를 무력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맞대응을 하게 되면 자칫 명분도 잃고 실익도 놓칠 수 있다. 지금은 합의라는 기준이 있기에 북한의 위반을 비판하고 준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북한이 여러 차례 위반했다고 해서 우리가 먼저 파기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일전 불사의 결기”, “보복과 응징”을 외치는 대신 더 큰 인내심을 갖고 북한의 합의 준수를 강력히 요구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설령 그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합의라는 안전장치를 우리가 먼저 걷어냄으로써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 일부 보수층이 강경 대응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안보는 전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윤 대통령과 정부의 신중한 접근과 대응이 절실하다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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