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수도권에 쏟아진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큰 피해가 난 가운데, 기후재난이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10일 현재 서울에서 숨진 6명 가운데 4명이 집중호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반지하 거주자였다.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 주택이 물에 잠겨 일가족 3명이 숨졌다. 그중 한명은 발달장애인이었다.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반지하 주택이 침수돼 집에 있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숨졌다. 영화 <기생충>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반지하의 열악한 주거 현실이 소중한 생명들을 앗아간 것이다.
반지하 주택은 도로보다 낮은 곳에 있기에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 속수무책으로 물에 잠길 수밖에 없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은 피할 새도 없이 화를 입을 수 있다. 문제는 반지하 주택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20년을 기준으로 서울에서만 20만이 넘는 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33만가구에 육박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의 대책은 더뎠다. 국토교통부가 쪽방 거주자 등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연결해주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을 시행 중이지만, 반지하 가구는 2020년이 되어서야 이 사업 대상에 포함됐다.
지원 규모도 턱없이 적어 33만가구에 이르는 반지하 거주자들이 열악한 주거 현실에서 벗어나기까지는 하세월일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앞으로 국지적 집중호우와 같은 기후재난이 더 잦아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후 전문가 네트워크인 ‘세계기후특성’(WWA)은 지난해 여름 200년 만의 폭우가 서유럽을 할퀴고 지나간 직후, 기후변화가 홍수 가능성을 최대 9배까지 높였다고 분석한 바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계는 폭염, 가뭄, 폭우 등 온갖 기후재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재난이 우리만 피해갈 리도 만무하다.
서울시는 10일 지하와 반지하는 주거 용도로 쓸 수 없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허가된 건축물도 일몰제를 적용해 순차적으로 없애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재난에 취약한 대상이 반지하만은 아닐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방재 시스템을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극한 기상현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출처: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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