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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빠의 육아 참여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세상칼럼

by 거친악어 2023. 4. 5.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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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 ㅣ 논설위원

 

“○○ 아버님, 바쁜 일 있으시면 그만 가보셔도 됩니다.”

몇해 전 아이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 총회에 아빠가 참석했다. 아이는 책상에 ‘아빠 환영’이라는 종이팻말을 올려뒀지만, 담임 선생님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총회가 시작되자마자, 아빠에게 ‘그만 가보셔도 좋다’고 한 것이다. 선의로 건넨 말이었겠지만, 아빠는 머쓱해지고 말았다. 당시 교실에는 엄마들 30명, 그리고 아빠는 혼자였다. 동료·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학부모 총회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엄마가 직장 일이 바빠서 못 오면 ‘눈총’을 받지만, 아빠가 못 오면 ‘이해’를 받는다.

 

굳이 개인사를 끄집어낸 것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충격적 지표가 나오게 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임신·출산·육아가 전적으로 여성의 일이라는 낡은 인식은 사회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이른바 ‘독박육아’로 상징되는 ‘주양육자=여성’이라는 공식 같은 것들이다.

청년세대가 출산파업에 나선 원인을 성 격차에서 찾게 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가 출산율 제고를 위해 쓴 예산은 약 320조원이다. 보육 인프라를 구축하고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등 다방면으로 정책을 쏟아냈지만 곤두박질치는 지표를 끌어올리진 못했다. 자연스레 워킹맘이 일·가정 양립을 더 잘하도록 지원하는 데 무게를 둔 정부 정책 방향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생겨났다. 여성에게 ‘일과 육아 모두 잘하라’는 응원을 보내봤자, 당사자들은 힘을 내는 대신 포기하게 된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2015년 이후 기혼 여성의 출산율마저 하락세로 돌아서고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계층에서 출산율이 엇비슷하게 떨어지면서, 이런 분석에 좀 더 힘이 실렸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마티아스 됩케 교수팀은 ‘출산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 연구보고서(2022년 4월, 전미경제연구소)에서 40여개국의 남성 육아분담 수준과 출산율 간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이스라엘과 스웨덴, 미국 등 아빠의 육아 기여도가 높은 나라의 출산율은 1.8명 이상인 반면, 한국과 일본, 체코 등 엄마가 3분의 2 이상을 기여하는 나라의 출산율은 1.5명 아래였다. 연구진은 과거 출산율 연구가 주로 소득 수준과의 관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가족 정책이나 아빠의 육아 태도 등이 중요 변수가 됐다는 취지에서 ‘새로운 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변형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미 연세대 교수(젠더사회학)는 가족형성기에 있는 밀레니얼 세대(1980~1990년대생)의 결혼·출산 가치관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데 주목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인정하는 동시에 가사노동·양육 등 돌봄도 여성의 몫이라는 ‘일 지향적 보수주의’(pro-work conservative) 관념이 한국 사회의 청년층에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과도한 이중부담을 안기는 보수적 가치는 출산기피로 이어진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의 첫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 결과가 무척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날 발표된 정책 과제에선, 국제 비교에서 늘 하위권인 성 격차 지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만년 꼴찌인 성별 임금 격차, 현저하게 낮은 남성의 육아분담률 등 고질적 문제에 주목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기대를 모았던 부모 맞돌봄 확대 정책도 3분기에나 마련하겠다고 한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해법은 정말 간단치 않다. 예컨대 노동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늘리고 가족 돌봄을 지원하는 휴가를 더 많이 부여한다고 치자. 하지만 여성들이 주로 이런 제도를 활용하는 처지에 놓인다면, 궁극적인 해법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나라 바깥으로 눈을 돌려, 과격한 정책을 본떠야 할까. 일본 후생성은 출산율 저하에 비상이 걸렸던 2000년을 전후로 ‘육아를 하지 않는 남성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아빠에게 출산휴가 한달을 유급으로 부여하는 건 어떤가.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아빠의 육아 참여에도 ‘골든타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배우자 출산휴가는 10일간 청구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을 대폭 늘리는 데 예산을 쓰자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여성은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데 견줘 남성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독박육아는 출산 초기의 성별 역할에 따라 굳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라 육아휴직 사용이 쉽지 않은 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좀더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출산휴가부터 확대하자는 취지도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0년 아빠 출산휴가를 14일에서 28일로 늘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나온 아이를 엄마만 돌봐야 하는 이유는 없다. 더 큰 평등을 위해 부부 모두가 아이를 챙기는 게 중요하다.” 아빠들에게 아이를 돌보는 기쁨을 안겨줄 때다.

whynot@hani.co.kr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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