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론스타의 제기로 10년을 끌어온 외환은행 매각 관련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일단락됐다. 수조 원을 물 수도 있는 소송에서 2900억원대로 배상액이 줄어 불상사를 막기는 했다. 그러나 20여년간 ‘먹튀’ 자본에 휘둘려 온 대한민국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제·사회적 수업료를 지불했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는 우리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 46억7950만 달러(6조1000억원)의 4.6%인 2억1650만 달러(2925억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벨기에 회사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사들인 뒤 2012년 하나금융에 3조9157억원에 다시 팔았다.
2배나 차익을 남겼음에도 론스타는 앞서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개입해 더 비싼 값에 팔 기회를 잃었다며 ICSID에 소송을 냈다. 또 정부가 하나금융과의 협상 때도 승인을 지연하고, 가격을 내리도록 압박해 7700억원 싸게 팔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정부가 ISD 소송을 당한 첫 사례라는 상징성이 강해 ‘바이 코리아’ 이미지에 치명타를 줄 수도 있었다. 그나마 중재 판정부가 주가조작 사건으로 처벌받은 론스타의 매각가 감액 책임 인정 등 대부분의 쟁점에서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준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손배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소송액을 부풀린 측면이 있어 정부가 잘 방어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금융 당국이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시켰다는 론스타 주장 역시 중재 판정부가 받아들인 것은 한국 정부엔 뼈아픈 일격이 아닐 수 없다. 민간의 의사결정에 대한 금융 당국의 어설픈 정책과 관여가 대규모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혈세로 메워야 한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교롭게도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론스타 사태에 직간접으로 관련됐던 인사들이 현 정부에 포진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향후 국내 금융 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과거 외환위기로 외국자본이 아쉬웠던 시절 먹튀 자본이 국내에서 활개를 치게 했던 과오는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투기 자본 횡포를 제어할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아울러 한국에만 불리한 게 없는지 투자조약 중재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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